도서관/2023 신간

[두고 온 여름] 성해나 - 잡고 싶었던 그 시절의 무언가

도서관은맑음 2023. 11. 29.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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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 온 여름
첫번째 소설집 『빛을 걷으면 빛』(문학동네 2022)에서 나와 타인을 가르는 여러 층위의 경계와 그 경계를 넘어 서로를 이해하려는 시도를 진중하고 미더운 시선으로 탐사했던 작가 성해나가 신작 소설 『두고 온 여름』을 펴냈다. 젊은 감각으로 사랑받는 창비의 경장편 시리즈 소설Q의 열여섯번째 작품이다. 왜 타인을 헤아리고 받아들이는 일은 언제나 낯설고 어렵기만 한지, 이제는 함께할 수 없는 인연과 슬픔도 후회도 없이 작별할 수 있는지, 실패한 이해와 닿지 못한 진심은 어떻게 의미 없이 사라지지 않고 희미하게나마 빛나는 기억으로 남게 되는지 한층 깊어진 응시와 서정으로 풀어냈다. 부모의 재혼으로 잠시 형제로 지냈지만 마음을 나누지 못하고 영영 남이 되어버린 기하와 재하. 두 사람이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며 들려주는 이야기가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되며 이어지는 이 소설은 뜻대로 되지 않는 관계와 좀처럼 따라주지 않는 마음을 경험한 모두에게 따스하면서도 묵직한 위로로 다가선다. 아울러 “정확하면서 예민하고, 명확하면서 깊고, 단정하면서 힘이 센”(윤성희, 추천사) 성해나의 문장은 한국문학 독자라면 누구나 기꺼이 반길 만하다.
저자
성해나
출판
창비
출판일
2023.03.17

 

 

두고 온 여름

 

 성해나의 소설은 처음 읽어 보았다.

 

 초반부에 어떤 문장을 읽으면서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읽고 싶었던 문학은 이런 느낌이야.

 문장을 꼭꼭 눌러쓴 느낌. 글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것을 담은 문장.

 

 성해나의 소설은 그랬다. 

 

 

잠깐 가족이었던 사람들, 풀지 못한 오해와 상대방의 행복을 바라는 이해

 

 기하와 재하

 아버지와 살던 기하네 집에 재하 모자가 들어오면서 둘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아버지는 재하 모자와 어렵게 다시 이룬 가정을 소중히 지키려고 했다. 

 기하는 자신이 아닌 재하와 재하 어머니를 더 신경 쓰는 아버지의 모습이 싫었다.

 

 재하 어머니는 어렸을 적에 부모님을 잃었다. 기하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재하는 자신에게 곁을 주지 않는 형과 맞닿을 수 없는 시간들을 가지고 싶었다.

 

기하와 재하가 둘이 번갈아 이야기를 하는 형식으로 소설은 진행된다.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문장.

 

 묵묵한 아버지의 짧은 말에 깊은 마음이 담긴 듯한 그런 분위기로 소설은 내내 흘러간다.

 

 기하와 재하는 변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헤어짐 뒤에 동화같은 결말은 없었다.

 

 사람들은 지나간 세월을 그리워한다.

 해주지 못한 게 많아서 후회하고, 잘못한 것을 후회한다.

 

 그런 지나간 계절에 대한 안부 인사, 그때 그랬었지. 그때의 모두에게 잘 지내란 말을 건네는 듯한 소설이다.

 

분량도 짧으니 간단히 읽고 사색에 잠기기에 좋은 책이다.

 


 

58. 비정에는 금세 익숙해졌지만, 다정에는 좀체 그럴 수 없었습니다.

 

58. 가감 없이 표현하고 바닥을 내보이는 것도 어떤 관계에서는 가능하고, 어떤 관계에서는 불가하다는 사실을 저는 알고 태어난 것일까요.

 

61. 소스를 세심히 섞는 형을 보며 나는 우리가 친형제였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둘만 아는 유머를 주고받으며 낄낄대었겠지요. 치고받으며 싸우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화해했을 겁니다. 용기나 궁리 없이도 대수롭지 않게 연약한 마음을 내비쳤을 수도 있겠지요. 그런 과거가 있다면 그런 미래가 있다면.

 

69. 울퉁불퉁한 감정들을 감추고 덮어가며, 스스로를 속여가며 가족이라는 형태를 견고히 하려고 노력했지요. 두 사람 모두 한번씩은 아픔을 겪었고, 그것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요. 물론 자신을 속일 틈도 없이 툭 튀어 나오는 날것의 감정들도 있었지만요.

 

74. 고여 있던 것을 흘려보내듯 잠잠히 어떤 울음이 안에 있던 것을 죄다 게워내고 쏟아낸다면, 어떤 울음은 그저 희석일 뿐이라는 것을 저는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비워내는 것이 아니라 슬픔의 농도를 묽게 만들 뿐이라는 것을요.

 

100. 한 시절을 공유했던 사람들을 떠올리면 그들과 어떻게 끝맺었든 그들이 어떻게 지내왔을지, 얼마나 변하고 또 얼마나 그대로일지 궁금해졌다. 헤어진 이들은 대개 두 부류로 나뉘었다. 다신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과 한번쯤은 더 만나도 좋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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