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양귀자
- 출판
- 쓰다
- 출판일
- 2013.04.01
인생, 그 모순적인 것에 관하여
양귀자 선생님의 모순 작품은 진작부터 읽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자꾸 책을 사대고, 빌려오고 하는 바람에 당장 수중에 없는 책은 읽기의 순서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독서모임에서 9월에 읽을 책을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고, 모순을 꼽았다.
신기하게도 모임원 모두 이 책을 읽어보고 싶었다고 했기에 다음 주제책으로 선정했고, 꼭 읽어야 할 그런 이유가 하나 더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국민책꽂이(https://www.bookoob.co.kr/)에서 새로 책을 빌릴 때 대여하게 되었다.
빌린 책은 아쉽새도 새로 나온 판은 아니지만 많은 내용이 개정되진 않았겠지 생각하며 읽었다.
인생을 깊게 연구하려는 그녀 안진진
책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25의 나이에 대학을 휴학하고 일을 하고 있던 안진진. 그녀는 어느날 갑자기 인생에 온 생을 걸어야겠다며 다짐을 한다. 아무 계기도 없던 날, 그녀가 자신의 인생을 그저 안일하게 흘려보낼 수 없다고 생각하고 결정하기로 한 것은 모순적이게도 결혼 상대자였다. 이 이야기는 안진진이 상반된 두 스타일의 남자 사이에서 진실한 사랑을 찾아 결혼으로 맺으려는 과정을 그린다. 그러면서 일란성쌍둥이이면서 결혼 후에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야 했던 자신의 엄마와 이모, 가족을 사랑하지만 가정 폭력과 가출을 일삼았던 아버지 그리고 자신과 동생, 이모네의 사촌들과의 대비 등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인생에 대한 다짐을 하고 고작 생각하는 것이 양다리 걸치던 결혼 상대자를 정하는 것이라니, 그것 참 모순적인 일이다.
하지만 4월 1일에 태어나 4월 1일에 결혼한 자신의 엄마와 이모의 반대되는 삶을 보면 그것도 중요한 것 같기도 하다. 아버지는 술꾼에 어머니를 팼고, 엄마는 억척같이 생계를 꾸려야 했으며, 자식들도 온통 문제만 일으키기 바빴다.
이모는 사업가와 결혼을 해서 부자 동네에 살면서 자녀들은 줄곧 엘리트 코스만 밟고 큰다.
안진진은 대책없고 감성적인 남자 김장우와 자신의 의견엔 안중 없는 것 같아 보이는 매우 계획적인 남자 나영규 사이에서 갈등한다. 안진진은 김장우를 사랑하는 자신을 사랑한다.
그리고 자신의 사랑을 확인한 순간 얽매일까 두려워 아버지와 똑같이 행동한 자신도 발견하게 된다. 너무 사랑해서 그 철창에 갇히기 싫어 떠나는 아버지, 그 아버지는 중풍에 치매를 얻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안전하고 고생 없이, 근심 없이 지내왔을 법한 이모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엄마는 돌아온 아버지와 교도소에서 속 썩이는 아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며 삶을 한탄하지만 어쩐지 그 안에서 엄마의 활력을 발견한다.
결국은 모순적인 삶의 모습
한날 한시에 태어나 완전히 다른 삶을 사는 엄마와 이모, 그건 그저 삶의 모습을 그려내기 위한 배경은 아닌 것 같다. 이모에게 기념일이면 늘 외식과 선물을 아끼지 않는 이모부는 겉으로 보기에 이모의 삶을 꾸며준다. 늘 마누라를 패고, 돈을 뜯어 가출을 일삼는 아빠와 완전히 대조되는 모습이다. 그러나 안진진은 아빠의 첫 폭력이 시작되던 날의 에피소드를 본인 자신이 되풀이하는 것을 발견하며, 아빠가 자신들과 엄마를 진심으로 사랑했음을 깨닫는다. 당연히 사랑이 있어야 할 이모와 이모부 부부의 사이에는 깊은 외로움과 골이 존재했고, 미움과 원망만 있는 자신의 부모 사이에는 사랑이 있었다.
사촌들도 그러했다. 동갑내기 사촌 주리가 피아노 전국 콩쿨에 나가 상을 받던 날, 안진진은 가출을 했다. 미국에서 유학하며 엘리트 코스를 밟고 승승장구하는 사촌들과 달리 안진진과 동생 진모는 늘 엄마의 골칫거리였다. 진모는 살인미수로 감옥까지 가게 되었다. 그러나 안진진은 사촌 주리에게서는 불행이야 말로 인생의 부피를 넓혀주는 것임을 깨닫는다. 그저 행복했을 일만 가득했을 사촌에게서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안진진의 사랑은 어땠을까. 사진을 찍고, 즉흥적이며 감상적인 김장우, 그는 부모를 일찍 여의고 형과 힘들게 일궈 놓은 사업체의 부도를 맞는 등 어려움을 겪는다. 나영규는 데이트 모든 코스를 예약해 놓을 만큼 철저하고 계획적인 남자이다. 안진진은 나영규의 빼곡한 계획 속에 어지러움을 느낀다. 숨이 답답함을 느낀다. 김장우를 향한 자신의 감정을 사랑이라 확신한다. 그러나 김장우에게 대한 자신의 사랑을 확신한 순간 시선을 피하고 삐딱하게 군다.
나영규에게는 자신의 어려움을 세세하게 털어놓을 수 있지만 김장우에게는 이모더러 엄마라고 했던 거짓말을 쉽사리 고쳐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오히려 나를 감추었고, 생애 처음 필름 끊긴 그날 안진진은 아버지와 똑같이 자신을 왜 구속하냐고 김장우를 마구 때렸던 것이다. 안진진은 사랑을 찾고자 했으면서 그 사랑에게서 도망치고자 했다.
모순된 삶에서 위로를 얻다
더욱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모순된 삶에서 위로를 얻을 수 있다. 결국은 나영규를 택하는 안진진의 모습에서 허탈함이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런 것이 우리 삶인 것이다. '진실한 사랑이 진리'라는 흔한 문구가 우리 삶에서 가장 먼 모습 같기도 하다.
아버지가 중풍과 치매로 물든 모습으로 돌아온 게, 오히려 엄마가 세상 억울한 일은 다 자기가 겪는 다며 괄괄한 울음을 내쏟는게 오히려 혈기가 넘쳐 보이는 듯 말한다. 정원 있는 저택에서 고상하게 농담이나 하던 이모는 더 이상 그 꺾인 꽃 같은 생활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삶을 마감한다. 고통 속에 있는 것과 평안 속에 있는 것. 어느 것이 살아 있는 것인가.
사랑을 깨닫는 순간 왜 나를 감옥에 갇히게 하냐며 상대방을 패는 아버지와 안진진의 심리는 얼마나 또 모순되는가. 사랑을 하는 것은 그 자신이다. 그러나 그 자신이 사랑 때문에 갇힐 것을 두려워하며 정 반대로의 행동을 한다.
그러나 삶은 때로 그렇다. 너무나 원하기 때문에 그 반대로 나갈 때도 있다.
하고 싶은 것을 해라. 사랑을 해라. 자신을 믿어라. 같은 흔하고 당연한 대사가 미처 설명해주지 못하는 삶의 모습이 있는 것이다. 늘 물건을 깨부수고 아버지로부터 탈출해야 하는 안진진의 가정과, 조용한 클래식 음악이 깔려있는 이모네의 가정 중 어느 곳에 행복이 있었던 것일까. 어느 곳에 삶이 있었던 것일까.
어쩌면 행복이라는 건 아예 없는 지도 모른다. 모두 다 행복하려고 하지만, 애초에 그런 건 없을 수도 있다.
모두가 골인점을 향해 달려가는 데, 아예 그 골인점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니 그것 참 재미있는 모순이겠다.
10. 에피소드란 맹랑한 것이 아니라 명랑한 것임에도
15. 이십대란 나이는 무언가에게 사로잡히기 위해서 존재하는 시간대다.
20. 내가 내 삶에 대해 졸렬했다는 것, 나는 이제 인정한다. 지금부터라도 나는 내 생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되어가는 대로 놓아두지 않고 적절한 순간, 내 삶의 방향키를 과감하게 돌릴 것이다 인생은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전 생애를 걸고라도 탐구하면서 살아야 하는 무엇이다.
58. 내 어머니는 날마다 쓰러지고 날마다 새로 태어난다.
116. 상처는 꼭 받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하고 은혜는 꼭 돌려주지 않아도 될 빚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장부책 계산을 그렇게 한다.
140. 과정법까지 동원해서 강조하고 또 강조해야 하는 것이 기껏해야 불행뿐인 삶이라면 그것을 비난할 자격을 가진 사람은 없다. 몸서리를 칠 수는 없지만
158. 인생이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악을 선택하게 만들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모순과 손잡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주리는 정말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209. 인생의 부피를 늘려주는 것은 행복이 아니고 우리가 그토록 피하려 애쓰는 불행이라는 중요한 교훈을 내게 가르쳐 준 주리였다.
188. 우리 모두를 한없이 사랑했으므로, 그러므로 내 아버지는 세 겹의 쇠창살문에 갇힌 것이었다. 아버지가 탈출을 꿈꾸고 길고 긴 투쟁을 벌인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268. 나도 세월을 따라 살아갔다. 살아 봐야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아직 나는 그 모순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받아들일 수는 있다. 삶과 죽음은 결국 한통속이다. 속지 말아야 한다.
273.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우이독경, 사람들은 모두 소의 귀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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